추사고택 뜻을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던 오래된 집입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고택은 입장료와 주차료가 무료라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역사 문화 공간입니다. 관광안내소와 새로 이전한 추사기념관이 가까이 있어 처음 방문하는 분도 편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 항목 | 내용 |
|---|---|
| 위치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
| 지정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
| 건립 | 조선 영조 때 월성위 김한신이 하사받은 집 |
| 규모 | 현재 24칸, 당초 53칸 |
| 입장료 | 무료 |
| 주차 | 무료 |

목차
추사고택의 역사 이야기
추사고택 뜻을 풀이하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던 옛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추사는 김정희 선생을 대표하는 호이고, 고택은 오래된 집을 뜻합니다. 그래서 추사고택은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이자, 유배에서 돌아온 뒤에도 머물렀던 공간으로 전해집니다. 고택 앞에는 추사 선생의 학문과 예술을 기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비석에는 그림은 장강 만리처럼 유장하고 글씨는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선생의 예술 세계를 짐작하게 합니다.
왕실과 인연이 깊은 집
추사고택은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 임금에게 하사받은 집입니다. 월성위는 왕의 사위에게 내리는 작위로,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했습니다. 원래는 충청도 53개 고을에서 한 칸씩 도와서 지었다고 해서 53칸 규모의 큰 저택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24칸 규모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세는 단위이니, 53칸이면 당시에 얼마나 큰 집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택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순옹주는 남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그 뒤 1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영조 임금은 처음에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지만, 훗날 정조 임금이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려 홍문을 세워 주었습니다. 고택 근처에서 이 열녀문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 구조
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랑채는 남자 주인이 머물며 손님을 맞이하고 학문을 닦던 공간으로,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습니다. 각 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되었습니다. 안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 배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중부 지방 대갓집의 전형적인 구조로, 여성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채광과 통풍을 살린 설계입니다.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해 막아 두었습니다. 대청은 다른 고택과 달리 동쪽을 향하고 있고, 안방과 부속 공간은 북쪽에 자리합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을 기본으로, 지형에 따라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했습니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추사 선생이 직접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해시계 석년이 있습니다.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돌기둥으로, 아들이 추사체로 글씨를 새겼다고 합니다.
사랑채 기둥 곳곳에는 추사체 주련이 걸려 있어, 고택 전체가 하나의 서예 전시장처럼 느껴집니다. 안채 기둥에는 추사 선생이 말년에 남긴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 최고의 반찬이고 부부와 자녀, 손자가 함께하는 것이 최고의 모임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노래한 이 문구는 화려한 관직과 유배 생활을 모두 겪은 선생의 깨달음이 담겨 있어 마음을 울립니다.
추사 선생의 삶과 예술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에 태어나 1856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실학과 금석학, 서예, 문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24세 때 청나라에 가서 당대 학자들과 교류한 뒤 조선에 돌아와 북한산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해 낸 일화도 유명합니다. 이때 받은 영향으로 더욱 독창적인 서체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추사체와 세한도
추사 선생은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년 넘는 유배 생활을 겪었습니다. 위리안치라는 가시울타리 안에 갇힌 채로도 글씨 연습을 멈추지 않았고, 그 시절 완성한 독창적인 서체가 바로 추사체입니다. 또 유배지에서도 의리를 지켜 책을 보내 준 제자에게 고마움을 담아 그린 그림이 국보 세한도입니다. 세한도는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름을 알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시련 속에서 진정한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 많은 사람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습니다.
추사고택 방문을 준비하는 분께 드리는 팁
추사고택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지만 반려동물 출입과 음식물 반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택 자체가 생활 공간이었던 곳이라 조용히 걸으며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지난봄에 다녀왔을 때는 수선화와 매화가 함께 피어 있어서 고즈넉한 분위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단풍이 든 고택을 다시 찾아볼 계획입니다.
추천 방문 동선
-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와 석년 해시계를 천천히 살펴봅니다.
- 사랑채 옆 오솔길을 따라 안채와 사당으로 이동합니다.
- 고택 뒤편에 있는 김정희 묘소와 백송공원까지 함께 둘러봅니다.
- 시간이 남는다면 1.3km 거리의 화암사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추사기념관과 백송
고택 바로 옆에 있던 추사기념관은 새 건물로 이전했습니다. 새 기념관은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95번지에 있으며, 2026년 4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추사체험실이 마련되어 있어 추사체 써보기, 탁본 뜨기 같은 활동을 직접 해볼 수 있습니다. 옥상전망대에서는 멀리 백송과 고조부 묘소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예산 용궁리 백송이 있습니다. 추사 선생이 24세 때 중국 연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붓대 속에 씨앗을 넣어 가져와 고조부 묘소 앞에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나무껍질이 하얗게 벗겨지는 백송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드문 소나무입니다. 백송공원에서는 추사체로 새긴 조각 작품과 함께 어린 백송들도 볼 수 있습니다. 공원 안내판과 조형물 글씨도 모두 추사체로 통일되어 있어, 걷는 내내 선생의 예술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추사고택의 의미를 되새기며
추사고택 뜻을 다시 생각해 보면, 단순히 오래된 집을 넘어 한 시대를 이끈 학자의 삶과 예술이 깃든 공간입니다. 왕실과 인연이 깊은 가문의 역사, 유배의 시련, 그리고 추사체와 세한도 같은 예술적 성취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김정희 선생의 학문과 예술을 가까이 느끼고,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어 갔으면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추사고택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A1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던 옛집입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있고 입장료와 주차료가 무료입니다.
Q2 추사고택에서 꼭 봐야 할 것이 있나요
A2 사랑채 앞마당의 석년 해시계, 추사체 주련, 안채의 편액, 그리고 근처의 예산 용궁리 백송을 추천합니다.
Q3 추사기념관도 함께 관람할 수 있나요
A3 네, 고택 옆에 새로 이전한 추사기념관이 있습니다. 추사체 체험과 탁본 뜨기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